2017년 기준으로 아이티에서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바로 국립 역사공원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입니다. 이 세계유산은 명칭 그대로 ‘시타델(요새)’, ‘상수시(궁전)’, ‘라미에르(국립공원)’라는 세 가지 구성 자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는 라미에르 국립공원 범위 안에 시타델과 상수시 궁전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건축물은 1804년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건설된 것으로, 현재까지도 당시의 유구가 남아 있습니다. 아이티는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독립을 이룬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리브해 국가의 선구자였던 아이티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내란과 열강의 압박 속에서 고난의 역사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를 전해주는 아이티 유일의 세계유산을 소개합니다.
국립 역사공원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란?
아이티는 세계 최초의 흑인 국가로 평가됩니다. 1794년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해방된 흑인 계층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고,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독립 혁명을 이끌었던 노예 출신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은 아이티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즉위 2년 뒤인 1806년에 암살당하고 맙니다.
데살린 이후의 권력을 두고 대립하던 두 명의 장군 가운데, 현재의 아이티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시타델과 상수시 궁전을 건설한 인물이 역시 노예 출신의 앙리 크리스토프였습니다. 그는 옛 종주국인 프랑스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티 해안에서 다소 떨어진 산악 지대에 견고한 요새와 화려한 궁전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 역시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독재적인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누적되면서 쿠데타를 두려워하던 크리스토프는 1820년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요새와 궁전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다가, 1982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명칭: 국립 역사공원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 / National History Park - Citadel, Sans Souci, Ramiers
주소: Milo, Haiti
공식 사이트 URL: https://worldheritagesite.xyz/citadel-sans-souci-ramiers/
국립 역사공원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로 가는 방법
이 세계유산이 위치한 곳은 아이티 북부의 밀로 마을입니다. 아이티에는 철도가 없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기 때문에,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카파이시앵까지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카파이시앵에 도착한 뒤에는 타프타프라 불리는 소형 버스를 개조한 합승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이동하게 됩니다. 특히 상수시에서 시타델까지는 약 10km에 이르는 산길이 이어지며,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는 구간입니다. 이 때문에 밀로에서 가이드를 고용한 뒤 노새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국립 역사공원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의 볼거리
1. 시타델 라페리에르
등재 명칭에 포함된 시타델은 정확히는 라페리에르 요새, 즉 시타델 라페리에르를 의미합니다. 해발 970m의 라페리에르 산 정상에 세워진 거대한 요새로, 1805년부터 약 12년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 건설 과정에서는 약 20만 명에 달하는 노동력이 혹사되었으며, 이는 앙리 크리스토프가 민심을 잃게 된 원인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의 재침공에 대비해 축조된 요새였지만, 실제 전투에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크리스토프의 시신은 시타델 안뜰에 비밀리에 매장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현재도 그 위용은 여전히 건재하며, 아이티의 화폐나 우표 디자인에 사용될 정도로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365문에 달하는 대포가 배치되어 있었고, 성 안에는 수많은 포탄이 그대로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약 5,000명의 병사가 1년간 농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전해지며, 대형 저수조와 식량 창고, 지하 감옥은 물론 빵을 굽는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유산 시타델의 또 다른 매력은 뛰어난 전망입니다. 아이티 전역은 물론,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인접한 섬인 쿠바까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2. 상수시 궁전
상수시 성으로도 불리는 상수시 궁전은 앙리 크리스토프의 거처로, 약 5년에 걸쳐 1813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상수시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같은 이름의 세계유산 궁전이 독일 포츠담에 존재하지만, 이 궁전의 모델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도입한 화려한 건축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건축 자재와 장식품이 다수 사용되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이 상수시 궁전에서 1820년 10월 8일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은으로 만든 소총에 금 탄환을 사용해 스스로를 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842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궁전은 크게 파괴되었으며, 이후 재건되지 않아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부지에 남아 있는 벽과 기둥을 통해 당시 궁전의 규모와 위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시대를 이끈 장군이 남긴 궁전 유적은 오늘날 고요한 세계유산 관광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아이티는 2010년까지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두 차례 연속 집권하지 못했을 정도로 정치 상황이 불안정했으며, 같은 해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의 영향으로 외교부의 여행경보 2단계가 발령된 바 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수준의 경보입니다.
다만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과도한 위험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히 국립 역사공원 ‘시타델, 상수시, 라미에르’는 아이티에서 유일한 세계유산으로, 매우 중요한 관광 자산에 해당합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가이드를 동반한다면 세계유산을 비교적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단, 가장 가까운 도시인 카파이시앵에서는 기본적인 주의와 대비가 필요합니다. 공항과 시내 일부 지역을 유엔 평화유지군이 경비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