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사에서는 기후현의 유명한 역사 스팟부터 위인들과 연관된 성지까지 상세히 소개합니다. 기후현은 일본의 중부 지역에 위치하며, 혼슈를 동서로 나누는 바로 그 중심지입니다. 과거 기후현은 남쪽의 '미노국'과 북쪽의 '히다국'으로 불렸으며, 특히 전국시대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수많은 전투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 격동의 시기에 역사 속 중심 무대였던 기후현은 많은 위인과 무장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역사 관광 명소가 풍부하며, 인기 무장의 고향이나 연관된 장소도 많아 역사 팬이라면 반드시 가보고 싶어질 곳입니다. 아래에서 각 역사 명소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으니, 기후의 역사 관광을 계획하신다면 꼭 참고해 보세요!
기후현의 역사 관광 명소 ① - 기후에 오다 노부나가의 성지가?!
기후현의 역사 명소를 이야기할 때 전국시대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로마치 시대 후반, 현재의 아이치현 서부 지역에서 태어난 전국 다이묘입니다. 뛰어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후를 지배하며 거점을 삼아 혼란스러운 전국시대에 패권을 주장하고 주변 세력을 제압해 나갔습니다.
이후 오다 세력은 본주의 대부분을 평정했으며, 기후는 도쿠가와 시대에 이르기까지 노부나가의 일족과 가까운 무장들에 의해 지배되고 관리되었습니다.
이처럼 기후와 오다 노부나가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며, 노부나가 팬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성지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후에서 어떤 역사적 명소를 만나볼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세요.
기후성(岐阜城)
기후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 통일의 거점으로 삼았던 성으로, 현재는 기후현 기후시를 상징하는 역사적 유산입니다. 원래 이름은 '이나바야마성'이었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이곳에 입성하며 지역명을 '기후'로 개명했고, 이 이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후성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폐성이 되었으나, 그 전까지는 오다 가문과 그와 친밀한 일족의 거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기후성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불리며 방어력이 뛰어났던 곳으로, 오다 노부나가조차 이 성을 점령하는 데 시간이 걸릴 만큼 난해한 요새였습니다. 현재 성을 오르는 루트도 꽤 힘든 하이킹 코스로 알려져 있어 체력이 요구됩니다. 다만, 금화산 로프웨이를 이용하면 성 가까이까지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 이를 활용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노부나가 공 저택 터(信長公居館跡)
기후 공원에 위치한 금화산 로프웨이 역 근처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거주했던 '노부나가 공 저택 터'가 있습니다. 교과서뿐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 '오다 노부나가'. 가끔은 마치 허구의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가 살았던 장소라는 점에서 큰 매력을 지닌 관광 명소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며, 공원 내에 위치한 '노부나가 저택 발굴 안내소'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의 정책과 생활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새로운 시각을 얻을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니 부담 없이 방문해보세요.
스마타 이치야성(墨俣一夜城)
오다 노부나가가 이나바야마성(현 기후성)을 공략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스마타 이치야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당시 키노시타 토키치로)가 하룻밤 만에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성입니다. 노부나가는 기후성을 공격하기 위해 근처에 거점이 필요했으나, 성과 너무 가까운 위치에 새 거점을 짓는다면 적에게 발각될 위험이 컸습니다. 이를 히데요시는 불과 며칠 만에 완성시켜 노부나가의 전략을 크게 도왔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실제로 성이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천수각이 아닌 급히 만든 소규모 요새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역사적 논란이 있지만, 스마타 이치야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세가 시작된 성지로 알려져 있으며, 성 부지 내에는 '도요쿠니 신사'가 있어 출세를 기원하는 이들이 자주 찾습니다.
현재 스마타성의 천수각은 후대에 복원된 것이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을 선사해 인기 있는 촬영 명소로 손꼽힙니다. 카메라를 들고 방문하면 인상적인 한 장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후현의 역사 관광 명소 ② - 세키가하라 전투
기후현의 역사 명소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소는 바로 '세키가하라'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1600년에 일어난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로, 정치적 권력을 두고 대립하던 이시다 미츠나리 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이 맞붙은 전쟁입니다. 이 전투는 일본 최대의 격전지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참전했던 각 무장의 진지가 관광 명소로 남아 있어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키가하라에서 어떤 역사적 명소를 만날 수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기후 세키가하라 고전장 기념관(岐阜関ケ原古戦場記念館)
기후 세키가하라 고전장 기념관은 '세키가하라 전투'를 주제로 다양한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2020년에 개관한 비교적 새로운 시설이지만, 풍부한 전시물과 알찬 구성으로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습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세키가하라 전투를 생생하게 재현한 몰입감 넘치는 시어터와 화승총, 대포, 갑옷 복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참전 무장들의 가문 문장이 새겨진 깃발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역사 팬들에게는 특별한 감동과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투 당시의 생활상, 전투의 기본 전략 등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흥미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관람이 될 것입니다.
기념관 근처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최종 진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이에야스가 진을 치고 있던 장소로, 기념관과 함께 방문하면 "정말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구나"라는 역사적 실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츠다이라 타다요시 · 이이 나오마사 진지 터(松平忠吉・井伊直政陣跡)
이번에는 특히 역사 팬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를 소개합니다. 세키가하라는 약 20만 명의 병력이 동서로 나뉘어 격돌한 대규모 전투로, 일본 전역에서 이름난 무장들이 집결했습니다. 각 무장이 진을 쳤던 장소에는 오늘날 기념비가 세워져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키가하라역에서 내려 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마츠다이라 타다요시와 이이 나오마사의 진지 터가 있습니다. 마츠다이라 타다요시는 동군의 총대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네 번째 아들이며, 이를 보좌한 이이 나오마사는 도쿠가와 군대에서도 정예 부대를 이끌었던 무장이었습니다.
전투 개시 직전, 비가 내린 뒤 전장에 짙은 안개가 끼어 양군 모두 움직임을 멈춘 채 대치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을 깨고 전투의 서막을 연 것은 도쿠가와의 가신 이이 나오마사가 우키타 세력에 포격을 가한 일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원래 전투의 첫 공을 세우는 임무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맡고 있었으나, 마츠다이라 타다요시와 이이 나오마사가 이를 앞지르며 선수를 쳤다고 합니다. 참고로, 뒤처진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진지는 마츠다이라 타다요시 진지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고니시 · 시마즈 진지 터(小西・島津陣跡)
고니시 유키나가와 시마즈 요시히로의 진지 터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주력 부대였던 두 세력이 본진을 구축했던 장소입니다. 각각의 터에는 기념비와 설명문이 세워져 있어 전투의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상인 출신 다이묘로, 같은 서군 주력 부대였던 우키타 히데이에 대한 은혜와, 숙적 가토 기요마사가 동군에 가담한 것에 대한 반발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분전했습니다. 그러나 병력이 충분하지 않아 패퇴한 뒤 처형되었으며, 당시 교황조차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지는 기리시탄 다이묘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전국 무장 중에서도 손꼽히는 맹장으로, 원래는 도쿠가와 측에 가담할 예정이었으나 상황의 흐름에 따라 서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년도 시마즈 영지 내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를 경계하느라 병력을 충분히 동원하지 못했고, 세키가하라 전투에는 불과 1,000명의 병력으로 참전했다고 합니다.
패배를 예감한 시마즈는 전투 중 적진 한가운데를 돌파하며 후퇴하는 초유의 전략을 펼쳤습니다. 도쿠가와 군대의 추격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다수의 희생을 감수한 끝에 고향인 사쓰마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진지 터는 시마즈 요시히로와 그의 가신들이 결사의 각오를 다졌던 장소로, 지금도 많은 역사 팬들이 그 흔적을 찾아 방문하고 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개전지(関ケ原の合戦開戦の地)
앞서 언급한 고니시·시마즈 진지 터 근처에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시작된 개전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병력이 격돌한 전투가 시작된 장소로, '천하의 분수령'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격렬한 전투의 서막이 열렸던 곳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지역은 비교적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료로 대여할 수 있는 자전거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으니, 자전거를 활용해 개전지를 비롯한 주요 명소들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후현의 역사 관광 명소 ③ - 현 내 곳곳의 역사적 명소
기후현에는 앞서 소개한 역사 관광지 외에도 다양한 사적, 성터, 그리고 위인들과 연관된 장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지로 여겨지는 유명한 명소부터 덜 알려진 소규모 성터까지, 각 명소마다 저마다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통해 이들 명소의 독특한 매력을 발견해 보세요. 기후현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아케치성 터(明智城跡)
기후현 출신의 위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은 바로 '아케치 미츠히데'입니다. 본능사 사건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배신자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그의 뛰어난 능력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인물로서의 인기도 크게 상승한 무장입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약 10여 년 동안 오다 노부나가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무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아시카가 쇼군가와 아사쿠라 가문에 몸을 의탁했으며, 더 이전에는 그의 고향인 미노를 지배하던 사이토 가문을 섬기는 등, 오다 가문에 봉사하기 전까지는 유랑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미츠히데가 20대까지 고향에 위치한 '아케치성'에서 생활했다고 전해집니다.
2020년 방영된 대하드라마의 영향으로, 아케치성 터는 성지로서 인기를 끌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성터 외에도 '오테문', '주베이자카' 등 관련된 명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오랜 시간 산책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철 히로미선 '아케치역'에서 남쪽으로 차로 5분,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아케치성 터 산책로 입구'가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오가키성(大垣城)
오가키성은 기후현 서쪽의 오가키시를 상징하는 성터로, 전략적 입지 덕분에 전국시대 동안 여러 차례의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진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성주는 물론 지배자가 자주 바뀐 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란이 끝난 도요토미 정권 시기에 천수각이 건설되었으며, 이후 에도와 메이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파괴되지 않고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으로 소실되었습니다. 현재는 외관이 복원되어 있으며, 일본의 '100대 명성' 중 하나로 선정되어 많은 역사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단순한 고성의 재현을 넘어 관광객을 위한 전시물과 패널을 풍부하게 배치해, 역사적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가키성은 JR 오가키역에서 약 1.4km 거리로 도보 20분 이내에 갈 수 있으며, 차량이나 버스를 이용해도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는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구조하치만성(郡上八幡城)
구조하치만성은 기후현 중부의 구조시에 위치한 성으로, 이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입니다. 구조시는 히다고지와 기후 시가지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자리하며, '오쿠미노'로도 불리는 산악 지역에 속합니다.
구조하치만성은 전국시대 중기에 세워져 에도 시대에는 주변 지역을 관할하는 번청으로 기능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폐성과 함께 해체되었으며, 현재의 천수각은 오가키성을 본떠 복원된 모의 천수각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작고 아름다운 산성을 좋아했던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구조하치만성을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성'이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구조하치만성은 역사 애호가뿐 아니라 절경을 감상하려는 방문객들에게도 사랑받는 관광 명소입니다.
구조하치만성은 구조하치만역에서 약 40분 거리로, 도보나 버스를 이용해 방문할 수 있습니다. 여유로운 구조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성으로 향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기후현에 위치한 역사 관광 명소들을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기후현은 전국시대에 동서 교류의 요충지로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정복과 방어 전략, 세키가하라 전투 등 중세 일본 역사를 크게 바꾼 사건들이 이 지역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명소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성터나 유적, 고분군 등 흥미로운 사적들이 기후현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활용해 각 명소를 둘러볼 수 있으니, 천천히 여행 계획을 세워 기후현의 역사를 직접 체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