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사찰과 관광 명소가 많은 교토에서도, 긴카쿠지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화려한 금각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사찰은, 교토를 방문할 때 빼놓기 어려운 명소 중 하나입니다.
긴카쿠지에는 오랜 역사와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 배경과 건축의 특징, 미학적 가치 등을 알고 나서 방문하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와비(侘び)’와 ‘사비(寂び)’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동산지쇼지 긴카쿠지입니다.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이 사찰의 매력을 중심으로, 주요 특징과 볼거리, 교통편, 관람 팁까지 함께 소개합니다. 교토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참고해보시기를 바랍니다.
1.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동산지쇼지 ‘긴카쿠지(銀閣寺)’
긴카쿠지를 만든 인물은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입니다. 그는 제6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와 히노 시게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암살되고 형이 요절하면서 1449년, 만 13세의 나이로 쇼군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곧 정치적으로 큰 혼란이 찾아옵니다.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 두 세력이 갈등을 일으키며, 잘 알려진 ‘오닌의 난’이 발생합니다. 이 전쟁은 무려 11년에 걸쳐 교토 전역을 혼란에 빠뜨렸고, 도시의 많은 사찰과 건물들이 소실되었습니다.
그 무렵 요시마사는 혼란을 떠나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자, 불에 탄 정토사 터에 새로운 별장인 ‘히가시야마전(東山殿)’을 짓기 시작합니다. 당시 금각사를 참고해 지어졌으며, 화려함보다 단정하고 절제된 미를 추구한 이 공간은, 도시를 등지고 지어진 점에서도 그의 심경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시마사는 안타깝게도 이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히가시야마전은 그의 법호인 ‘지쇼인(慈照院)’에서 이름을 따와 동산지쇼지(東山慈照寺)로 불리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긴카쿠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긴카쿠지를 둘러보실 때에는 단순한 건축물로 보기보다, 문인과 예술 후원자로 알려진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삶과 그 시대의 배경을 함께 떠올리며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
명칭: 동산지쇼지 긴카쿠지/東山慈照寺銀閣寺
주소: 2, Ginkakuji-cho, Sakyo-ku, Kyoto-shi, Kyoto, Japan
공식・관련 사이트 URL: https://www.shokoku-ji.jp/ginkakuji/
2. ‘긴카쿠’인데, 왜 은색이 아닐까요?
금각사는 화려한 금박으로 덮인 외관이 인상적입니다. 그에 비해 긴카쿠지는 눈에 띄는 은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름에 ‘은(銀)’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걸까, 의아하게 느끼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해석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각사가 자리한 ‘기타야마전(北山殿)’이 기타야마 문화를 대표했던 공간이라면, 긴카쿠지가 세워진 ‘히가시야마전(東山殿)’은 동시대의 또 다른 문화권인 히가시야마 문화를 상징하는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이 둘을 대비하여 금각사에 대응하는 이름으로 ‘은각사(銀閣寺)’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긴카쿠지의 본당은 목조 2층 누각 건축으로, 정식 명칭은 지쇼지의 ‘관음전’입니다. 참고로 금각은 로쿠온지(鹿苑寺)의 ‘사리전’을 가리키지만, 전체 절을 금각사라고 부르듯, 긴카쿠지 역시 관음전이 아닌 사찰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3. 긴카쿠지가 교토 시내를 등지고 있는 이유
긴카쿠지의 정문을 지나 중문으로 이어지는 참도에는 빽빽하게 손질된 대나무 울타리가 줄지어 있습니다. ‘긴카쿠지 울타리’라 불리는 이 구불구불한 참도를 따라 걷다 보면, 점차 세속에서 벗어나 긴카쿠지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긴카쿠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1층의 툇마루가 동쪽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서쪽에 위치한 교토 시내를 등지고 있는 형태로, 일부러 반대 방향을 향해 지어진 것입니다. 왜 이런 방향으로 지어졌을까요? 그 배경에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개인적인 심경이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이었던 요시마사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 요시미를 양자로 삼아 쇼군 자리를 물려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아들 요시히사가 태어나면서 후계 구도가 복잡해졌고, 이 갈등은 곧 오닌의 난이라는 대규모 내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닌의 난은 무려 11년에 걸쳐 교토를 전쟁터로 만들었고, 도시 전체가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가던 요시마사는 아내 히노 토미코의 친정까지 정치에 개입되면서 더 이상 상황을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가 무너지고 도시는 불타버린 가운데, 요시마사는 현실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듯 히가시야마 별장을 지었습니다. 긴카쿠지가 교토를 등지고 있는 건축 방향은, "이제 더는 교토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요시마사의 절망과 회피의 심정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4. 국보 긴카쿠, 관음전(銀閣/観音殿)
코케라부키 지붕으로 지어진 관음전은, 금각사의 사리전과 사이호지의 루리덴을 본떠 만든 2층 누각 건축입니다. 기타야마 문화의 중심이었던 금각에 대응해, 히가시야마 문화의 중심이었던 이 관음전을 긴카쿠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동쪽에 펼쳐진 긴쿄치와 히가시야마 방향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지어졌습니다.
1층에 해당하는 신쿠덴은 쇼인즈쿠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긴쿄치에 면한 넓은 툇마루에 앉아 요시마사가 바라보았던 풍경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2층 초온카쿠은 선종 양식의 불전으로, 꽃 모양 창문인 카토마도가 특징입니다.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금각과 비교하면, 긴카쿠는 겉보기에 다소 소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로마치 시대 후기에 번성한 히가시야마 문화를 대표하는 이 건축물은, 나이를 거듭할수록 그 아름다움이 더 깊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5. 고게츠다이와 긴사단(向月台と銀沙灘)
정원 한가운데에는 마치 후지산처럼 쌓아올린 모래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고게츠다이(向月台)’라고 불리는 이 산 모양의 모래 구조물은, 앉아서 달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된 것은 에도 시대 후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달빛을 반사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흰 모래 위에 파문과 해안을 표현한 평평하고 날카로운 형태의 모래 정원은 ‘긴사단(銀沙灘)’이라고 합니다. 유서 깊은 사찰이면서도 전형적인 가레산스이(고산수) 정원과는 전혀 다른, 마치 현대 미술 작품처럼 느껴지는 고게츠다이와 긴사단 역시 긴카쿠지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국보 도큐도(東求堂)
도큐도(東求堂)는 이후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지불당입니다. 히와다부키 지붕과 이리모야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며, 지불당이지만 요시마사 공의 거처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네 개의 방 중 북동쪽에 위치한 ‘도진사이(同仁斎)’는 요시마사가 가장 아꼈던 서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코노마와 족자, 그리고 4조 반 다다미방 형식의 기원이 된 이 공간은, 훗날 일본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장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초암다실 문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며, 이곳에서 와비와 사비의 미의식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긴카쿠와 도큐도는 1558년에 발생한 전란에서도 훼손되지 않고 남은 건축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비공개 공간이라 외부에서만 볼 수 있지만, 봄과 가을 두 차례 약 두 달간 특별 공개 기간이 마련됩니다.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므로, 미리 일정을 확인하고 교토 여행을 계획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7. 본당 호조(本堂-方丈)
본당인 호조에는 요사 부손과 일본 남화의 대가로 알려진 이케노 타이가가 그린 품격 있는 후스마에(미닫이문 그림)가 남아 있습니다. 볼거리가 많은 공간이지만, 이곳 역시 평소에는 비공개 구역입니다.
8.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놓치지 마세요
긴카쿠지는 히가시야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경내 동쪽의 산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 가볍게 산책하듯 오르실 수 있습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긴카쿠를 비롯해 정원과 사찰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교토 시내 일부도 보이지만, 바로 앞에 위치한 요시다야마가 병풍처럼 도시의 전경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이런 배치를 통해, 사찰의 입지에도 깊은 고심을 담았던 요시마사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는 주변 산들이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 고요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긴카쿠지를 찾으신다면 꼭 전망대까지 발길을 옮겨보시길 바랍니다.
9. ‘고잔 오쿠리비’ 점화의 시작을 알리는 대문자산, 히가시야마 뇨이가타케
매년 8월 16일에는 교토의 전통 행사인 ‘고잔 오쿠리비(五山送り火)’가 열립니다. 밤 8시부터 대문자, 묘호, 배 모양, 좌대문자, 도리이 순으로 봉화가 차례로 타오릅니다. 이는 ‘쇼라이(精霊)상’이라 불리는 조상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보내드리는 의식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점화되는 것이 바로 대문자산이라 불리는 히가시야마 뇨이가타케입니다.
그 뇨이가타케 기슭에 자리한 긴카쿠지에서는, 오쿠리비 당일에 고마키를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앓고 있는 병을 적어 낸 고마키를 화로에서 태우면 병이 낫는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도 참여하실 수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경험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지쇼지(긴카쿠지) 가는 길 – ‘철학의 길’ 산책도 함께 즐기세요
긴카쿠지에 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교토역에서 출발할 경우 시영버스 17번 또는 5번을 타고 ‘긴카쿠지도’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환승 없이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직행 버스가 아니더라도 1일 승차권 등을 이용하면 ‘긴카쿠지 앞’이나 ‘긴카쿠지도’까지 효율적으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전철을 이용할 경우 가장 가까운 역은 게이한 전철의 ‘데마치야나기’역입니다. 하지만 역에서 긴카쿠지까지는 2km 이상 떨어져 있어, 도보로는 약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교토대학 캠퍼스를 양옆으로 바라보며 이마다가와도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좋지만, 관광 전에 너무 지치지 않도록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교토는 관광 도시라 길가에서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사계절마다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긴카쿠지 주변에는, 남쪽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길’ 산책로도 함께 추천드립니다.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이니, 긴카쿠지 방문 시 꼭 함께 들러보시기 바랍니다.